오늘날 수제초콜릿의 본고장이 된 유럽 등지에 초콜릿이 전해진 것은 1502년 콜럼버스가 유카탄 반도의
카카오콩을 포함한 농산물을 가지고 돌아간 것이 그 시초라고 합니다. 이후 16세기 중반에 멕시코를 탐험한 스페인의 페르디난도 코르테스가 스페인 상류층에 초콜릿을 음료의 형태로 소개하면서 유럽 전역에 퍼지게 되었는데, 17세기 영국에는 초콜릿 애호가 클럽이 탄생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1679년 초콜릿 파우더가 선보였고, 1828년에는 네덜란드인 콘라드 반 후텐이 카카오 콩을 압착하여 지방을 추출, 코코아버터를 만들었습니다. 코코아버터를 추가하면 예쁜 초콜릿 과자를 만들 수 있기에, 이 코코아버터는 초콜릿을 음료에서 과자로 만드는 길을 열었습니다.
초콜릿 하우스에서 정치의 꽃을 피우다-영국
스페인에서 시작된 마시는 초콜릿 음료의 유행은 17세기 영국의 초콜릿 애호가 클럽을 탄생을 가져왔습니다. 영국의 초콜릿 하우스는 귀족계급, 신사계급, 그리고 새롭게 출현한 중산층의 정치 및 문화 생활의 클럽으로 바뀌어 정치적 결단을 내려야 할 위치에 있는 사람들의 토론장소가 되었습니다. 산업혁명은 카카오와 초콜릿 역사에 중대한 영향을 끼쳤으며 런던에서 시작된 판형초콜릿의 보급으로 초콜릿 대중화가 이루어졌고 프라이 (fry's)나 캐드버리(cadbury)와 같은 기업들은 사회적 양심을 지키려 노력했다고 합니다. 캐드버리 가문은 버밍엄 근교의 본빌에 종업원을 위한 주택, 식당과 독서실을 갖춘 모델 타운을 만들어 종업원들의 복지향상에도 힘을 기울였다고 합니다.
국가산업으로서의 초콜릿-벨기에
플랑드르 지방은 2세기 동안 스페인 제국의 지배를 받음으로서 카카오를 주성분으로 한 음료를 처음으로 개발한 지역이었습니다. 17세기 말부터 최초의 초콜릿 제조업자들이 브라셀에 정착하기 시작 , 장 노이 하우스에 의해 1912년 프랄린(praline)이 만들어졌으며 프랄린은 주로 몰딩을거쳐 대량으로 생산되어 고디바(Godiva), 레오니다스(Leonidas), 노이하우스(Neuhaus), 길리안(Gilian)등의 이름으로 공급되고 있습니다. *프랄린(견과류, 신선한 크림, 버터 등으로 속을 채운후 초콜릿 층으로 봉인된 것으로 현재 초콜릿 전문점 에서 볼수 있는 고급 핸드메이드 초콜릿의 효시.)
1946년에 설립된 고디바(Godiva)는 벨기에에서 생산된 프랄린중 50%를 수출하고 있으며, 도쿄와 뉴욕에도 공장이 있고 세계적으로 고급 초콜릿 마케팅의 선두를 달리고 있습니다.
최고의 초콜릿을 위하여- 프랑스
루이 13세와 결혼한 스페인 공주에 의해 프랑스 궁정에 유입된 초콜릿 역시 왕족과 귀족들의 즐거움이 되었고 왕비 마리 앙트와네트는 전속 chocolatier를 두기도 하였다고 합니다. 초콜릿 산업의 보호와 고품질을 유지하기 위해 프랑스 정부는 초콜릿에 관한 법률을 제정해 가짜 초콜릿의 유통을 막고 있으며 최고의 맛을 위한 장인들의 노력은 수많은 초콜릿을 생산하고 있습니다. 많은 chocolatier들은 그들만의 비밀스러운 조제 비법으로 명성을 떨치고 있으며 소비자들에게 즐거움을 선물하고 있습니다. 대표적 기업으로 발로나(Valrohna), 라 메종 드 쇼콜라, 보나 (Bonnat)등이 있습니다.
반호텐의 코코아 - 네델란드
초콜릿 제조 기술 영역에서 네델란드에 주요공헌을 한 사람은 Coenraad-Van Houten 입니다. 암스테르담의 화학자로 초콜릿에서 카카오버터를 제거함으로써 미세한 분말형태의 초콜릿 제조법을 개발했습니다. 이 분말은 "코코아" 로 불리며 간단하고 소화가 잘되는 근대화된 초콜릿 음료입니다. 반 호텐이 새로운 지방제거법과 알칼리염 처리 방법을 개발하여 초콜릿의 분말과 고체의 두가지 형태의 대량생산이 가능하게 된 후로 네델란드는 분말 카카오를 전문적으로 생산해 내기 시작했으며 멋보다는 실리와 질을 중시하는 네델란드 사람들은 순수한 카카오 분말의 질을 한단계 끌어올렸습니다. 대표적기업으로 반 호텐(Vanhouten), 벤스드롭(Bensdorp), 드쟌(De Zaan), 제르켄스(Gerkens) 등이있습니다.
초콜릿의 나라 - 스위스
18세기가 돼서야 초콜릿을 발견한 스위스는 초콜릿 제조방법을 혁신하는 개혁의 발상지가 되었고 초콜릿 소비량이 세계 제일인 초콜릿 국가가 되었습니다. 초콜릿의 대중화와 상업화는 스위스에서 더욱 속도가 붙었는데, 1876년 스위스 제과업자 다니엘 피터는 당시 앙리 네슬레가 개발한 분말우유를 첨가해 밀크 초콜릿을 만들었으며 더 나아가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처음으로 초콜릿에 헤이즐넛을 첨가하기도 하였습니다. 또한 1878년 스위스 초콜릿업자 루돌프 린트는 카카오원두와 설탕, 분말우유 등을 천천히 오랫동안 으깨면서 갈아내는 ‘콘칭(conching)’ 과정을 가능하게 하는 기계를 개발하여 카카오콩 입자를 훨씬 곱고 균일하게 하여 식감을 개선하였는데, 이러한 혁신을 통해 개발된 밀크 초콜릿은 시장을 휩쓸었습니다.1970년이후에는 초콜릿에 얼룩이 생겨나지 않게 하는 Tempering "적온처리법"이 발명되었는데 이 방법은 카카오 버터가 많이 포함되어있는 고급초콜릿을 만드는 데 있어 지금까지도 매우 중요한 과정이다. 대표적 초콜릿회사로 네슬레(nestl), 린트(Lindt), 슈샤드(Suchard)등이 있습니다.
쟌두야의 요람-이탈리아
음료인 동시에 음식으로서 유행했던 초콜릿은 다른 나라와는 달리 카톨릭 국가인 이탈리아에서는 종교적 관례인 성직자의 단식에 위배되는가 아닌가 하는 논쟁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고 합니다. 그 당시의 초콜릿은 최음제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지요. 초콜릿 바바로아를 비롯해 초콜릿을 이용한 수많은 달콤한 디저트를 만들었고 에스프레소 커피, 초콜릿, 크림을 같은 비율로 섞어 만든 "비체린(bicerin)" 음료와 함께 아몬드, 헤이즐넛, 호두가 섞인 부드러운 초콜릿 "쟌두야(Gianduja)" 는 세계적으로 유명합니다. 대표적 초콜릿 기업은 카파렐리(Caffarel), 페루지나(Perugina) 등이 있습니다.
초콜릿의 영원한 고향-멕시코
가장 좋은 카카오 나무의 재배부터 최고급 초콜릿의 생산까지 전 세계를 여행하고 있는 초콜릿의 영원한 고향은 멕시코입니다. 스페인으로 전해져 바로크 시대의 유럽을 점령한 초콜릿과는 다른 독특한 형태의 초콜릿을 선호하며 요리에 곁들여 나오는 초콜릿 소스와 아이스크림 , 타블렛 형태의 거친느낌의 초콜릿, 카카오 원산지에서 만들어 지는 100% 내추럴 초콜릿 등이 사랑받고 있습니다. 초콜릿에 멕시코 특유의 칠리와 데킬라를 혼합한 맛도 독특하며 홈메이드 초콜릿 분말을 만드는 모습 또한 수천년전의 그들의 조상 마야와 아스테카 문명의 향수이기도 하다고 합니다.
초콜릿의 대중화를 이룬 허쉬(Hershey)- 미국
1893년 시카고에서 열린 만국박람회를 통해 독일의 초콜릿 제조 기계들을 구입한 밀턴 스네이블리 허쉬(Milton snavely hershey)는 역사깊은 초콜릿 산업에서 초콜릿 제조에 대량생산 방식을 도입해 초콜릿 입힌 카라멜을 시작으로 수많은 카카오 가공식품을 만들고 초콜릿의 대중화를 이루었습니다. 또한 펜실베니아 주 데리 마을에 초콜릿 공장을 세우고 초콜릿 마을 - 허쉬를 이루었으며 허쉬의 초콜릿 바, 코코아는 미국 시장을 석권하여 허쉬의 "키세스"초콜릿은 초콜릿의 대명사가 되었습니다.
동양에서 가장 먼저 초콜릿을 손댄 것은 일본으로 1878년에 일본 도쿄의 풍월당에서 초콜릿을 제조했고 1899년에는 森永商店(모리나가 제과의 전신)이 크림 초콜릿을 제조 판매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대한제국 말기에 고종황제의 외국인 요리사 손탁씨에 의해 황실에 처음 소개되었다고 전해집니다. 일설에는 초콜릿을 가장 먼저 먹어본 사람은 명성황후라고도 하는데, 당시 러시아 공사 부인이 선물한 양과자 중에 초콜릿이 들어있었다고 합니다. 또한 이토 히로부미가 왕궁을 드나들 때마다 임금을 에워싼 상궁들을 회유하려고 초콜릿을 비롯하여 양과자를 선물했다는데 이것이 처음이라는 설도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일반 가정에 초콜릿이 보급되기 시작한 것은 1968년 동양제과 및 해태제과에서 초콜릿을 생산, 판매하면서부터입니다.
출처 : 네이버지식백과사전
eumboda
2012년 3월 25일 일요일
초콜릿의 기원
초콜릿(chocolate)은 카카오콩을 원료로 한 식품을 말합니다.
카카오나무의 꽃은 향기가 없지만 색은 희색에서 밝은 노란색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합니다. 나무의 키는 7m까지 자란다고 하며, 럭비공같은 열매로 나무줄기에 25-57개정도 열리는데 길이 15~25cm 정도되는 열매에는 씨가 20~60개 들었다고 합니다. 이 열매의 씨가 초콜릿의 원료인 카카오콩입니다.
원산지는 남미 적도 부근 아마존 지대의 거대한 숲속의 습하고 더운 기후의 계곡지대로 추정이 되며, 이후에 유럽인들이 자신들의 식민지에 옮겨 심어 오늘날 전세계 생산량의 70% 정도가 코트디부아르, 가나 등 서아프리카에서 생산되고 있습니다. 카카오나무는 20여 가지의 품종이 있지만, 이 중 크리올로(Criollo)와 포레스테로(Forestero), 트리니타리오(Trinitario)가 초콜릿 생산에 사용됩니다. 크리올로는 맛과 향이 풍부하면서도 섬세해 최고로 치지만 병충해에 약하고 수확이 적고, 포레스테로는 풍미가 떨어지지만 강건하고 생산량이 많아 전세계 생산량의 대부분을 차지합니다. 트리니타리오는 크리올로와 포레스테로의 교배종입니다.
카카오나무를 처음 재배한 것은 신대륙의 선사시대 약 삼천여년전 중앙아메리카 연안에 살던 올맥(Olmec)족이며, 올멕족은 카카오를 마야(Maya)족에게, 마야족은 다시 아스텍(Aztec)족에게 전해 주었습니다. 이들은 카카오콩으로 만든 음료를 초콜라틀(chocolatl)이라고 불렀는데, 황제 또는 귀족만 마시는 귀한 음료였다고 합니다. 고대의 초콜릿은 원기를 회복시키는 효능으로 인해 신들의 열매로 불릴 정도로 귀하게 여겨졌으며, 카카오에 ‘신들의 음식’이라는 뜻의 테오브로마(Theobroma)라는 학명이 붙은 것도 여기에서 유래한다고 합니다. 카카오콩은 '갈색 금'으로 화폐로 통용되었는데, 카카오콩 열 알로 토끼 한 마리를 사고,백 알로 노예 한 사람을 샀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초콜릿이란 단어는 초코아틀(tchocoatl)로 소리나는 마야족의 언어 'xchocoatl'을 소리나는 대로 옮겨 적은 것이라는 견해도 있고 또 다른 견해는 1676년 토마스 게이지가 제안한 것으로, 'tchocoatl'은 물을 의미하는 '아틀(atl)'과 초콜릿 음료의 거품을 내기 위해 일종의 거품기인 몰리니요로 저을 때 나는 의성어 'tchoco'의 합성어라는 가정이 있습니다.
'카카오'라는 단어는 '카카우아틀(cacahuatl)'에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카카우아들은 초콜릿 음료를 뜻하는 말로, '아틀'은 물을 의미하기 때문에 이 말은 '카카오의 물'로 옮겨질 수 있으며 초콜릿 음료가 갈은 카카오원두와 물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적절한 합성어로 볼 수 있다고 합니다. 또한 카카오나무의 열매를 일컫는 프랑스어'카보스(cabosse)'는 스페인어로 머리를 뜻하는 '카베사(cabeza)'에서 유래됐다고 합니다.
출처 : 초콜릿이야기
카카오나무의 꽃은 향기가 없지만 색은 희색에서 밝은 노란색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합니다. 나무의 키는 7m까지 자란다고 하며, 럭비공같은 열매로 나무줄기에 25-57개정도 열리는데 길이 15~25cm 정도되는 열매에는 씨가 20~60개 들었다고 합니다. 이 열매의 씨가 초콜릿의 원료인 카카오콩입니다.
원산지는 남미 적도 부근 아마존 지대의 거대한 숲속의 습하고 더운 기후의 계곡지대로 추정이 되며, 이후에 유럽인들이 자신들의 식민지에 옮겨 심어 오늘날 전세계 생산량의 70% 정도가 코트디부아르, 가나 등 서아프리카에서 생산되고 있습니다. 카카오나무는 20여 가지의 품종이 있지만, 이 중 크리올로(Criollo)와 포레스테로(Forestero), 트리니타리오(Trinitario)가 초콜릿 생산에 사용됩니다. 크리올로는 맛과 향이 풍부하면서도 섬세해 최고로 치지만 병충해에 약하고 수확이 적고, 포레스테로는 풍미가 떨어지지만 강건하고 생산량이 많아 전세계 생산량의 대부분을 차지합니다. 트리니타리오는 크리올로와 포레스테로의 교배종입니다.
카카오나무를 처음 재배한 것은 신대륙의 선사시대 약 삼천여년전 중앙아메리카 연안에 살던 올맥(Olmec)족이며, 올멕족은 카카오를 마야(Maya)족에게, 마야족은 다시 아스텍(Aztec)족에게 전해 주었습니다. 이들은 카카오콩으로 만든 음료를 초콜라틀(chocolatl)이라고 불렀는데, 황제 또는 귀족만 마시는 귀한 음료였다고 합니다. 고대의 초콜릿은 원기를 회복시키는 효능으로 인해 신들의 열매로 불릴 정도로 귀하게 여겨졌으며, 카카오에 ‘신들의 음식’이라는 뜻의 테오브로마(Theobroma)라는 학명이 붙은 것도 여기에서 유래한다고 합니다. 카카오콩은 '갈색 금'으로 화폐로 통용되었는데, 카카오콩 열 알로 토끼 한 마리를 사고,백 알로 노예 한 사람을 샀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초콜릿이란 단어는 초코아틀(tchocoatl)로 소리나는 마야족의 언어 'xchocoatl'을 소리나는 대로 옮겨 적은 것이라는 견해도 있고 또 다른 견해는 1676년 토마스 게이지가 제안한 것으로, 'tchocoatl'은 물을 의미하는 '아틀(atl)'과 초콜릿 음료의 거품을 내기 위해 일종의 거품기인 몰리니요로 저을 때 나는 의성어 'tchoco'의 합성어라는 가정이 있습니다.
'카카오'라는 단어는 '카카우아틀(cacahuatl)'에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카카우아들은 초콜릿 음료를 뜻하는 말로, '아틀'은 물을 의미하기 때문에 이 말은 '카카오의 물'로 옮겨질 수 있으며 초콜릿 음료가 갈은 카카오원두와 물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적절한 합성어로 볼 수 있다고 합니다. 또한 카카오나무의 열매를 일컫는 프랑스어'카보스(cabosse)'는 스페인어로 머리를 뜻하는 '카베사(cabeza)'에서 유래됐다고 합니다.
출처 : 초콜릿이야기
2012년 3월 3일 토요일
사교계의 초콜릿
아직까지 런던에 초콜릿하우스라는 이름으로 사교장이 남아 있는지 모르겠네.
지난번 여행 때 펍 또한 클래식한 곳이나 역사적인 곳은 남아 있지 않아 아쉬웠는데..
유럽의 다른곳에 비하여 오늘날 초코렛문화가 발달하지 않은 영국에서 런던에서
옛흔적들을 찾아 보기란 쉽지가 않을 듯 싶기도 하다.

차주전에 봉이 담겨져 있는게 잼있다.
아무래도 굳어질 수 있는 초콜릿을 저어 따라 마셔야 하기에 ^^
차주전같은 경우 또한 일반 주전자에 비해 주둥이가 짧은 것이 특징.
아래사진은 초콜릿하우스에서 사용됐을 잔들인데 역시 화려하다.
일반커피잔과 별반 다르지 않은듯 하지만 자세히 보면 잔의 높이가 조금 높은(깊은)게 특징.
또한 클래식한 모델의 잔들을 보면 찻잔 양쪽에 손잡이가 달렸던데..
왜 그랬는지에 대한 이유는 좀 더 공부해보고 올려 보자!!

위에 두사진은 빠리 10구에 위치한 초콜릿박물관 웹사이트에서 담아온 사진이다.
기회가 된다면 꼭 한번 방문해 봐야 겠다..
@예술의 전당 V갤러리에서
사진출처 : choco-Story, museeduchocolat
Chocolatiere
쇼콜라티에
블로그 첫 페이지...
쇼콜라티에를 꿈꾸며 오픈한 첫 블로그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담아 낼런지 자신은 없지만 한결같은 마음으로 꾸준히 하나씩 담아 보자!!
같은 분야의 일도 아니고 다른 두가지를 동시에 한다는게 쉽지는 않지만 즐기는 자는 아무도 이길자가 없으니
즐거운 마음으로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나눈다는 생각으로 시작해 보자!!
때론 실망 스러웠던 모습들도 모두 말이지!
eumboda : 내가 보고 느꼈던 것들에 대해..
eumdamda : 내가 직접 만지고 경험했던 것들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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